백두대간사람들 23 태백산- 태백산 공군사격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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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215,025회 작성일 18-08-28 11:55본문
하늘이 운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굵어지기까지 했다. 슬픈 하늘을 가리려는 듯 낮게 더 낮게 깔리는 구름은 태백산의 마루금을 숨기고 계곡까지 빼곡하게 채우고 나선다. 하늘은 좀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산, 태백의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구름이 감춘 것은 슬픈 하늘과 태백산의 마루금만이 아니었다. 전투기의 폭음도, 그 전투기가 떨어뜨린다는 폭탄의 폭연도 가려버렸다. “비오는 날은 훈련이 없습니다.” 태백산 남서쪽 십승지지 천평계곡에 자리잡은 공군 필승전술사격장 부대장 전원규 중령은 말을 아꼈다.
평일에 천제단을 오르는 사람들은 갑자기 날아드는 전투기의 폭음에 종종 놀라곤 한다. 그러곤 천제단에서 남서쪽으로 바라보이는 긴 활주로가 실제 활주로가 아니라 공군의 공대지 사격훈련장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핏대를 높이게 마련이다. “어떻게 민족의 영산 태백산에다 포격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전 중령이 말을 아끼는 이유였다. 그러나 공군은 필승사격장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단 하나밖에 없는 전술사격장이기 때문이란다.
천제단 상공을 비행하는 전투기들은 국군의 날 행사에서 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추락이 염려스러울 정도로 유난히 낮게 나는가 하면 갑자기 비행기가 뒤집히도록 급하게 방향을 꺾는다. 깊은 계곡 속으로 곤두박질쳤다가 이내 다시 쏜살같이 하늘로 치솟기도 한다. 곡예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격추당하지 않기 위해 ‘회피기동’을 하는 것이라 한다.
전투조종사들에게 태백산 상공은 늘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 이뤄지는 곳이다. “태백산은 지형을 식별하기도 어렵고 항상 레이더 사이트의 공격이 이뤄지기 때문에 여느 훈련보다 더 많은 긴장이 필요합니다.” 전투기가 사격장 상공에 접근하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사격장 주변 레이더 기지에서 보내는 경보신호다. 경보신호는 곧 적의 레이더에 자신이 탄 전투기가 포착된 것을 의미한다.
조종사는 레이더의 추적을 피해야 하고 지상의 레이더는 비행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서로가 가상의 적이 되어 훈련을 치르는 전술사격장은 국내에서 필승사격장이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만약 대공포 신호라면 11초 이내에, 미사일 신호라면 20초 이내에 피해야 합니다. 못 피하면 격추를 의미합니다.” 사격장 통제탑에 일주일간 통제장교로 파견 나온 이기석(34) 대위는 태백산이 조종사들에게는 얼마나 필요한 곳인지 하소연하듯이 설명한다. “이곳은 공기흐름까지 불규칙한 곳입니다. 어떤 때는 비행기가 마치 시골버스를 탄 것처럼 흔들리기도 합니다. ‘북한 지역도 이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조종간을 부여잡고 목표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만약 필승사격장이 문을 닫고 훈련이 중단된다면 유사시 실전을 어떻게 치르겠습니까.”
천평계곡에 공군의 전술사격장이 들어서게 된 것은 ‘지형이 북한과 유사하고 주거지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맞았기 때문이다. 79년의 이야기다. 천평계곡은 동쪽의 태백산과 서쪽의 민백산과 옥녀봉, 남쪽의 고직령에 둘러싸인 수 만평의 분지다. 북한 비행장 대부분이 이런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산재한 1000m급 이상의 고지들도 북한의 지형과 유사하다고 한다.
“이전하라는 요구가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옮기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공군에 훈련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런 지형은 국내에서 이곳뿐입니다.” 공군쪽의 하소연에는 막상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해도 어느 지역이 사격장을 받아 줄 것이냐는 하소연이 담겨 있다.
사격장은 드물게 미군과 우리 공군이 절반씩 비용을 대 만들어진 곳이다. 장소를 찾은 공군은 장비와 운용경험이 필요했다. 본토에 ‘레드 플랙’ 전술사격장을 운용하고 있는 미군에 손을 내밀었다. 조건은 5 대 5. 부지와 관리를 우리 공군이 맡고 미군은 레이더 등의 장비를 맡았다. 사격장 건설에 필요한 비용을 절반씩 나누는 만큼 사격장 사용시간도 절반씩 나누기로 하는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사격장이 미 공군사격장으로 알려지게 된 원인이었다. 태백산 천제단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활주로에 놓여 있는 미군 비행기들도 이런 오해를 부추겼다.
오키나와나 괌의 미군기지에서 미군기가 날아온다는 소문에 대해 공군은 이렇게 설명했다. “주한 미공군 자체가 미군 태평양공군사령부 소속입니다. 오키나와의 전투기들도 유사시 한반도에 투입됩니다. 그들이 오는 것입니다. 유사시를 대비해 한반도의 지형을 익히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그들이 오키나와에서 직접 이곳 사격장으로 날아올 수는 없습니다. 국내의 다른 미군기지에 기착해 주한 미공군과 한국 공군 작전사령부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미 공군은 필승사격장 사용을 줄이고 있다고 한다. 사격장 사용 비중은 이미 6.5 대 3.5 정도로 바뀌었다. 주둔하던 미 공군도 지난 98년 1월 완전히 철수했다고 한다. 다만 록히드마틴사에서 나온 미국 민간인들이 미군의 전자전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필승사격장을 미군훈련장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공군은 ‘명예’까지 내세워 반박한다. 세계적으로 전술사격장을 운용하는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 한국뿐으로 그만한 기술을 보유한 공군력을 폄하하지 말라는 뜻이다.
천평계곡 모형 활주로에 늘어선 비행기와 트럭들은 기총소사로 벌집이 되어 있다. 날개까지 꺾인 비행기와 문짝이 떨어져 나간 트럭에는 ‘US ARMY’가 선명하다. 미군이 제공한 모형들이다. 그래도 형체는 잘 알아볼 수 있다. “미사일 한방에 수 십만달러입니다. 하픈미사일은 100만달러가 넘어요.” 쏘고 싶어도 비용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20여년 동안 대공 공격을 받은 목표물들이 여전히 형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사격장은 총면적이 1800여만평이 넘는다고 한다. 태백산도립공원의 3배에 이르는 광대한 면적이다. “실제 사격장은 150여만평입니다. 나머지는 혹시 있을지 모를 피탄 피해를 막기 위한 안전지역입니다.” 모형활주로와 실폭탄 투하가 이뤄지는 계곡을 보노라면 한탄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지역은 발을 딛기 어려울 정도로 초록이 빽빽하다. 사격장이 들어선 뒤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은 탓이다. 옛 산판길에는 30여년생은 족히 될 만한 나무들이 산판의 아픈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지난해 한 환경단체에서는 사격장의 소음 때문에 중대형 포유류들이 태백산 지역을 떠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격장의 유일한 민간인 김영수(43) 군무원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격장 내 유선을 설치하고 정비하는 업무를 맡고 있어 한 달에 적어도 3번은 사격장 주변을 돈다는 김씨는 멧돼지 등을 잡을 때 쓰는 덫을 보여 주었다. 무게 때문에 미처 회수하지 못한 덫이나 올무 등이 아직도 산에는 지천이라고 했다.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고라니나 노루, 오소리 등은 아주 흔합니다. 지난 겨울에는 고라니를 사냥하는 시라소니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김씨는 개를 4마리나 기르는 동물애호가라고 한다. 사격장에서 17년을 지냈다는 김씨는 동물은 도감을 통해 배우고 나물은 산에 익숙한 동네 아주머니 등을 통해 배운다고 했다. 김씨는 수달이 고기를 먹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느냐고 묻는다. 김씨가 알려준 계곡에는 천연기념물인 원앙 한 마리가 낯선 발자국에 놀라 ‘후드득’ 황급히 자리를 뜬다. 청정지역에서만 산다는 물까마귀도 연신 물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모형 타겟이 놓여 있는 활주로에는 연습용 폭탄이 자신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꿩과 멧비둘기가 여유를 부린다. 김씨는 멸종 위기에 놓인 흰뺨독수리도 종종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다. 사격장이 들어서면서 계곡 하나는 박살이 났지만 나머지 부분은 사람들의 손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요즈음 태백산은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공군사격장을 나가라고 하는 이들은 그 자리에 태백시를 살릴 관광시설을 세우고 싶어한다. 어떤 이는 그곳에 댐을 만들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태백산에 수로터널을 뚫어 태백시의 식수로 쓰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만큼 천평계곡 물은 맑았다. 탄광지역에 카지노 이야기가 나올 때는 천평분지에 카지노호텔을 짓고 스키장도 만들고 골프장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공군은 민간인의 잦은 출입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두르려던 계획을 취소했다고 한다. 가리왕산에 산림청이 두른 철망이 야생동물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보도를 접한 뒤였다. 사격장을 지키는 공군은 생태전문가가 없다. 태백의 자연이 좋아 다른 군무원들은 모두가 떠났지만 17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씨가 전문가라면 전문가다. 그러나 공군은 배우고, 아는 모든 방법은 기꺼이 따르려고 한다고 말한다.
하루종일 비를 내리던 하늘은 저녁무렵이 돼서야 개기 시작했다. 구름이 걷힌 능선은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요란스럽지 않고 푸근했다. 이제 저 산을 지키기 위해서 개발을 희망하는 지역주민이나, 사격장이 필요한 공군이나, 태백의 자연을 지키려는 환경단체가 머리를 맞댈 일이다. 1800여만평의 넓은 자연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미래를 살아갈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일 것이다. <정감록>은 천평계곡을 ‘영월정동상류가장난종’(寧越正東上流可藏亂踪)이라고 적고 있다. 계속되는 사격훈련에도 푸르름을 더해가는 천평계곡은 벌써 난리의 흔적을 제 스스로 감추고 있었다.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대간사람들-22-태백산-태백산-공군사격장을-가다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평일에 천제단을 오르는 사람들은 갑자기 날아드는 전투기의 폭음에 종종 놀라곤 한다. 그러곤 천제단에서 남서쪽으로 바라보이는 긴 활주로가 실제 활주로가 아니라 공군의 공대지 사격훈련장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핏대를 높이게 마련이다. “어떻게 민족의 영산 태백산에다 포격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전 중령이 말을 아끼는 이유였다. 그러나 공군은 필승사격장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단 하나밖에 없는 전술사격장이기 때문이란다.
천제단 상공을 비행하는 전투기들은 국군의 날 행사에서 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추락이 염려스러울 정도로 유난히 낮게 나는가 하면 갑자기 비행기가 뒤집히도록 급하게 방향을 꺾는다. 깊은 계곡 속으로 곤두박질쳤다가 이내 다시 쏜살같이 하늘로 치솟기도 한다. 곡예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격추당하지 않기 위해 ‘회피기동’을 하는 것이라 한다.
전투조종사들에게 태백산 상공은 늘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 이뤄지는 곳이다. “태백산은 지형을 식별하기도 어렵고 항상 레이더 사이트의 공격이 이뤄지기 때문에 여느 훈련보다 더 많은 긴장이 필요합니다.” 전투기가 사격장 상공에 접근하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사격장 주변 레이더 기지에서 보내는 경보신호다. 경보신호는 곧 적의 레이더에 자신이 탄 전투기가 포착된 것을 의미한다.
조종사는 레이더의 추적을 피해야 하고 지상의 레이더는 비행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서로가 가상의 적이 되어 훈련을 치르는 전술사격장은 국내에서 필승사격장이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만약 대공포 신호라면 11초 이내에, 미사일 신호라면 20초 이내에 피해야 합니다. 못 피하면 격추를 의미합니다.” 사격장 통제탑에 일주일간 통제장교로 파견 나온 이기석(34) 대위는 태백산이 조종사들에게는 얼마나 필요한 곳인지 하소연하듯이 설명한다. “이곳은 공기흐름까지 불규칙한 곳입니다. 어떤 때는 비행기가 마치 시골버스를 탄 것처럼 흔들리기도 합니다. ‘북한 지역도 이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조종간을 부여잡고 목표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만약 필승사격장이 문을 닫고 훈련이 중단된다면 유사시 실전을 어떻게 치르겠습니까.”
천평계곡에 공군의 전술사격장이 들어서게 된 것은 ‘지형이 북한과 유사하고 주거지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맞았기 때문이다. 79년의 이야기다. 천평계곡은 동쪽의 태백산과 서쪽의 민백산과 옥녀봉, 남쪽의 고직령에 둘러싸인 수 만평의 분지다. 북한 비행장 대부분이 이런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산재한 1000m급 이상의 고지들도 북한의 지형과 유사하다고 한다.
“이전하라는 요구가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옮기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공군에 훈련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런 지형은 국내에서 이곳뿐입니다.” 공군쪽의 하소연에는 막상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해도 어느 지역이 사격장을 받아 줄 것이냐는 하소연이 담겨 있다.
사격장은 드물게 미군과 우리 공군이 절반씩 비용을 대 만들어진 곳이다. 장소를 찾은 공군은 장비와 운용경험이 필요했다. 본토에 ‘레드 플랙’ 전술사격장을 운용하고 있는 미군에 손을 내밀었다. 조건은 5 대 5. 부지와 관리를 우리 공군이 맡고 미군은 레이더 등의 장비를 맡았다. 사격장 건설에 필요한 비용을 절반씩 나누는 만큼 사격장 사용시간도 절반씩 나누기로 하는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사격장이 미 공군사격장으로 알려지게 된 원인이었다. 태백산 천제단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활주로에 놓여 있는 미군 비행기들도 이런 오해를 부추겼다.
오키나와나 괌의 미군기지에서 미군기가 날아온다는 소문에 대해 공군은 이렇게 설명했다. “주한 미공군 자체가 미군 태평양공군사령부 소속입니다. 오키나와의 전투기들도 유사시 한반도에 투입됩니다. 그들이 오는 것입니다. 유사시를 대비해 한반도의 지형을 익히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그들이 오키나와에서 직접 이곳 사격장으로 날아올 수는 없습니다. 국내의 다른 미군기지에 기착해 주한 미공군과 한국 공군 작전사령부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미 공군은 필승사격장 사용을 줄이고 있다고 한다. 사격장 사용 비중은 이미 6.5 대 3.5 정도로 바뀌었다. 주둔하던 미 공군도 지난 98년 1월 완전히 철수했다고 한다. 다만 록히드마틴사에서 나온 미국 민간인들이 미군의 전자전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필승사격장을 미군훈련장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공군은 ‘명예’까지 내세워 반박한다. 세계적으로 전술사격장을 운용하는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 한국뿐으로 그만한 기술을 보유한 공군력을 폄하하지 말라는 뜻이다.
천평계곡 모형 활주로에 늘어선 비행기와 트럭들은 기총소사로 벌집이 되어 있다. 날개까지 꺾인 비행기와 문짝이 떨어져 나간 트럭에는 ‘US ARMY’가 선명하다. 미군이 제공한 모형들이다. 그래도 형체는 잘 알아볼 수 있다. “미사일 한방에 수 십만달러입니다. 하픈미사일은 100만달러가 넘어요.” 쏘고 싶어도 비용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20여년 동안 대공 공격을 받은 목표물들이 여전히 형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사격장은 총면적이 1800여만평이 넘는다고 한다. 태백산도립공원의 3배에 이르는 광대한 면적이다. “실제 사격장은 150여만평입니다. 나머지는 혹시 있을지 모를 피탄 피해를 막기 위한 안전지역입니다.” 모형활주로와 실폭탄 투하가 이뤄지는 계곡을 보노라면 한탄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지역은 발을 딛기 어려울 정도로 초록이 빽빽하다. 사격장이 들어선 뒤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은 탓이다. 옛 산판길에는 30여년생은 족히 될 만한 나무들이 산판의 아픈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지난해 한 환경단체에서는 사격장의 소음 때문에 중대형 포유류들이 태백산 지역을 떠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격장의 유일한 민간인 김영수(43) 군무원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격장 내 유선을 설치하고 정비하는 업무를 맡고 있어 한 달에 적어도 3번은 사격장 주변을 돈다는 김씨는 멧돼지 등을 잡을 때 쓰는 덫을 보여 주었다. 무게 때문에 미처 회수하지 못한 덫이나 올무 등이 아직도 산에는 지천이라고 했다.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고라니나 노루, 오소리 등은 아주 흔합니다. 지난 겨울에는 고라니를 사냥하는 시라소니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김씨는 개를 4마리나 기르는 동물애호가라고 한다. 사격장에서 17년을 지냈다는 김씨는 동물은 도감을 통해 배우고 나물은 산에 익숙한 동네 아주머니 등을 통해 배운다고 했다. 김씨는 수달이 고기를 먹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느냐고 묻는다. 김씨가 알려준 계곡에는 천연기념물인 원앙 한 마리가 낯선 발자국에 놀라 ‘후드득’ 황급히 자리를 뜬다. 청정지역에서만 산다는 물까마귀도 연신 물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모형 타겟이 놓여 있는 활주로에는 연습용 폭탄이 자신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꿩과 멧비둘기가 여유를 부린다. 김씨는 멸종 위기에 놓인 흰뺨독수리도 종종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다. 사격장이 들어서면서 계곡 하나는 박살이 났지만 나머지 부분은 사람들의 손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요즈음 태백산은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공군사격장을 나가라고 하는 이들은 그 자리에 태백시를 살릴 관광시설을 세우고 싶어한다. 어떤 이는 그곳에 댐을 만들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태백산에 수로터널을 뚫어 태백시의 식수로 쓰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만큼 천평계곡 물은 맑았다. 탄광지역에 카지노 이야기가 나올 때는 천평분지에 카지노호텔을 짓고 스키장도 만들고 골프장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공군은 민간인의 잦은 출입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두르려던 계획을 취소했다고 한다. 가리왕산에 산림청이 두른 철망이 야생동물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보도를 접한 뒤였다. 사격장을 지키는 공군은 생태전문가가 없다. 태백의 자연이 좋아 다른 군무원들은 모두가 떠났지만 17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씨가 전문가라면 전문가다. 그러나 공군은 배우고, 아는 모든 방법은 기꺼이 따르려고 한다고 말한다.
하루종일 비를 내리던 하늘은 저녁무렵이 돼서야 개기 시작했다. 구름이 걷힌 능선은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요란스럽지 않고 푸근했다. 이제 저 산을 지키기 위해서 개발을 희망하는 지역주민이나, 사격장이 필요한 공군이나, 태백의 자연을 지키려는 환경단체가 머리를 맞댈 일이다. 1800여만평의 넓은 자연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미래를 살아갈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일 것이다. <정감록>은 천평계곡을 ‘영월정동상류가장난종’(寧越正東上流可藏亂踪)이라고 적고 있다. 계속되는 사격훈련에도 푸르름을 더해가는 천평계곡은 벌써 난리의 흔적을 제 스스로 감추고 있었다.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대간사람들-22-태백산-태백산-공군사격장을-가다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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